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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사진만 열심히 찍고 딸과 헤어져 와이프에게 갔습니다. 가는내내 혹시나 이게 마지막일까? 병원에서 전화가 오지 않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좋은 일로 병원에서 연락올 일은 전무했으니깐 말입니다. 그리고 조리원에 있는 와이프에게 갔더니 그제서야 마취가 깬 듯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창원 삼성 병원으로 간 것은 아는데 어떻게 됬냐고 물어 봤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아이의 상태를 말해 주고 와이프의 상태를 살폈습니다. 의외로 담담했습니다. 그리고 옷을 꺼내고 팔에 꽂혀 있던 바늘을 빼더니 저에게 가자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진정해라고 중환자실이라서 부모라도 면회가 안된다고 내일 가야되다고 얘기하니 그제서야 다시 자리에 누웠습니다. 아무말도 없었습니다.

사실 저희 와이프는 나중에 자기와 말동무 해줄 수 있는 딸을 아들보다 더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 딸을 낳고 몇시간이 지나도록 얼굴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슬펐겠습니까? 하지만 어머니는 강한 것 같습니다. 출산전 준비해둔 유축기를 가지고 젓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내일 면회갈 때 먹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자연분만하면 몇시간만에 털고 일어나지만 제왕절개를 하면 2~3일은 누워 있지 않습니까? 아픈 몸에도 애를 생각하며 젖을 짜는 엄마의 모습이 그때는 불쌍해 보였지만, 시간이 지난 후 돌이켜 보니 정말 강해 보였습니다.

중환자실은 할아버지, 할머니, 동생 그 누가 와도 면회가 안되었습니다. 오직 부모만이 30분의 면회가 허락되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자 어제는 볼 수 없던 많은 인파가 줄을 서 있었습니다. 다들 이런저런 사유로 어린 아이들이 중환자실에 있는 사람들이겠지 말입니다. 사람들 얼굴에서 느껴졌습니다. 이 사람의 아이들이 호전되고 있는지 상태가 좋지 않은지 말입니다. 우리도 빨리 호전되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고 싶은데 의사 선생님 말처럼 오늘을 알 수 없으니 말입니다.

큰 한숨 몰아내고 손을 씻고 가운 같은 것을 입고 들어갔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있었지만 그 순간은 저희 아이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와이프는 최대한 미소지어 웃으며 아이와 얘기를 나누면서(물론 혼자 얘기 했겠지 말입니다.) 우유를 먹이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한 얘기지만 자기 그렇게 웃어야 애기가 자기가 아픈줄 모르고 빨리 나을꺼라고 생각 했다고 합니다. 근데 우유를 먹이는 도중 심박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었고 긴급하게 간호사가 와서 호흡기 위치를 조절하고서야 또 진정이 되었습니다. 정말 심장 떨리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루에도 이렇게 몇번씩 조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과연 애가 살아날수 있을까? 간절했지만 걱정도 많이 되었습니다.

엄마와 아이의 첫 만남을 끝내고 다시 의사 선생님과 면담시간입니다. 내일 정말 중요한 수술을 하는데 여기서 아기의 생사가 결정날꺼라고 했습니다. 일반적인 기흉 수술과 비슷한 것이지만, 아이의 상태와 나이 때문에 어떻게 될 지 모른다고, 수술 시간에는 밖에 보호자가 있어달라고 얘기했습니다. 또 기쁨보다 우울한 기분을 가지고 조리원으로 향해서 잠을 청했지만 쉽게 잠이 오지도 않았습니다.

결전의 날이 밝았습니다. 할머니는 새벽부터 기도하신다고 절로 들어가셨고 와이프는 수술부위가 문제가 있어 치료를 받느라 저 혼자 병원 수술실 앞에 대기했습니다. 수술은 1시간 정도로 빨리 끝났습니다. 초초한 마음에 담배를 몇개 피웠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의사 선생님은 오늘 밤이 마지막 고비라고 했습니다. 정말 긍정적인 말을 해주셨으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렇게 다음날도 아이는 아직 무사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안정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1주일이 지나자, 저희도 환한 얼굴로 병문안을 오기 시작했지 말입니다. 지금은 신생아 입원 비용이 무료지만 그때만 해도 거의 부모가 다 부담했습니다. 아이가 조금씩 호전되자 저희도 병원비가 생각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근데 우연히 심심해서 유료 와이파이비를 지불하고 조리원에서 켠 노트북에서 의외의 성과가 나왔습니다.

아이의 병명인 신생아 호흡 곤란 증후군을 쳤는데, 3백여가지의 병명이 같이 검색이 되엇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뭐지? 하면서 닫아 버렸을텐데 그때는 큰 병원비가 걸려 있었기 때문에 전부 다 훑어 보았습니다. 다행히 저희 아이 병명이 신생아 휘귀 질환으로 들어가 90%이상 나라에서 지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건 병원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았고 의사 선생님께 이런 것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선생님의 서명이 필요하다고 해도 잘 모르셨습니다. 이걸 자세히 알고 병원에 가지 않았다면 몰랐을 정보를 단돈 1,000원 얻은 것이지 말입니다.

아이는 계속 좋아져 2주가 지난 후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이것 저것 다해서 병원비도 40만원 정도 내고 말입니다. 지금은 언제 아팠던 아이 맞나 싶을 정도로 뛰어다니지만 아직 그때의 생각만 하면 우울해집니다. 여러분 아이들 있으시면 열심히 같이 노시지 말입니다. 얼른 커서 여러분 곁을 떠날날이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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