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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주의 일이었습니다.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와이프에게 갑자기 전화가 한통 왔습니다. 무슨 일이지하고 전화를 받았는데 딸아이의 울음 소리만 들렸습니다. 분명 스피커 폰으로 하고 있는게 분명했습니다. 왜 소율아 무슨 일이야? 하고 물어도 울음 소리만 더 커졌습니다. 몇번을 더 물은 뒤에야 간신은 얻은 대답은 말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생인 딸아이가 받아쓰기 시험에 매진하고 있었는데(1주일마다 한번씩 시험을 칩니다.) 이번주에는 계속 60점~80점 밖에 안나오더랍니다. 그래서 엄마가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 시험 100점 받으면 니가 먹고 싶어하는 걸 사줄께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뜩이나 점수 때문에 짜증이 나 있던 아이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엄마는 시험 백점 받고 와서 스테이크 사달라고 하면 비싸서 안 사줄꺼잖아. 하며 서러움에 북받쳐서 울음이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우리 딸이 울보인 까닭도 있지만 엄마가 매번 이 핑계 저 핑계로 스테이크를 안 사준것을 저도 많이 봐 왔건든요. 와이프가 비싸서 스테이크를 안 사준 것보다는 가성비 때문에 안 사준것이 컸습니다. 저희 4식구가 밥 먹으러 가면 스테이크 먹는것 두배의 가격도 심심찮게 먹거든요. 우리 딸아이가 아직 가격에 신경 쓸 나이가 아니라 몰라서 그렇지요.

아무튼 딸 아이에게 이번에 100점을 맞으면 아빠가 데려가서 스테이크를 사준다고 달래서 간신히 울음을 그치게 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가서 도대체 실력이 어느 정도인데 100점이 안나올까해서 같이 연습을 해 보았습니다. 오늘 10번은 넘게 연습했다며 자랑하는 딸아이를 보며 한번 웃고 시작한 테스트에서는 또 80점이 나왔습니다. 그동안 틀렸던 문제들과 함께 보았는데 역시 받침이 문제였더군요. 받침이 'ㅎ', 'ㅀ', 'ㅌ'이 들어가는 글자들만 계속 틀렸습니다. 외국인들이 우리말을 배울 때 가장 힘들어하는 것중에 하나가 받침이라고 하더군요. 물론 성인들도 안되는 사람들도 많구요, 저도 한번씩 틀리는 거니깐요. 같이 두 세번을 연습해 보니 도저히 100점이 나올 것 같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이에게 용기만 북돋아 주고 재웠지요. 제가 할 수 있는 그날의 최대한의 배려였습니다.

근데 오늘 와이프에게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 무슨 일이 생긴 줄 아냐고 말입니다. 저는 와이프와 자주 트러블이 생기는 큰 아이가 문제 생겼나 싶어서 왜 무슨 문제 있나? 하고 물으니, 와이프가 미술 학원 선생님이 전화가 와서 남매 둘이 미술 학원을 같이 와야 하는데 딸아이만 왔다면서 무슨 일 있으시냐고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와이프도 별 다른 일 없는데요. 하고 얘기하니 미술 선생님이 그럼 한번 더 딸 아이에게 확인하고 연락 드리겠다면서 전화를 끊었다고 합니다. 아직 큰아이도 전화기가 없어서 무슨 일이 생긴게 아닐까하는 조바심이 들던 차에 미술 선생님으로 부터 문자가 왔다고 합니다. 딸아이가 오늘 받아쓰기 시험에서 100점을 맞았는데 너무 기뻐서 오빠와 함께 미술학원에 오는 걸 까먹고 기쁜 소식을 엄마한테 먼저 알리기 위해 먼저 왔다고 하네요.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지 않습니까? 정말 많이 웃었습니다.

아이들이 1주일에 한번씩 치는 시험이 뭐 크게 대단하겠냐 하실껍니다.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하니깐요. 하지만 그것으로 힘들어한 아이들에게는 만사를 제쳐놓고 알릴 가장 시급하고 기쁜 일이었던 것입니다. 문득 마라톤의 기원 생각나서 한번 더 웃었습니다.

때마침 오늘 회사도 조금 빨리 맞쳐서 저도 만사를 제치고 달려가서 아이들과 시원하게 스테이크 한 조각을 먹었습니다. 저희가 사는 진영에는 스테이크 가게가 많지도 않고 맛도 별로여서 와이프가 한사코 다른 걸 먹으러 가자고 했지만, 이렇게 간절했던 딸아이에게 다른 어떤 맛있는 것을 먹여서 대신하겠습니까. 그 순간만은 가성비고 뭐고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딸 아이가 좋아하는 스테이크를 사주자였습니다. 맛있게 먹는 딸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또 한번 행복을 느낀 하루였습니다.

집에 오면서 딸아이에게 다음 100점 받는다고 또 스테이크 먹으러 가자면 안된다. 스테이크는 오늘로 끝이다. 라고 다짐을 받고 다음은 1주가 아닌 2주 연속으로 미션을 업그레드해서 갈비를 먹으러 가기로 했습니다. 이러다가 우리 가게 먹는 걸로 거들나는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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